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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포]“퀄리티로 年350억”… 토종 셔츠 ‘예작’ 공장 가보니 2019-12-04
품질에 대한 20년 ‘순정’…형지I&C 경쟁력
평균 경력 40년 이상 마에스트로 기술력
서울에 남아 있는 유일한 셔츠 생산 공장
[이데일리 이윤화 기자] 가로 7m, 세로 1.4m 크기의 판에 셔츠 원단이 차곡차곡 쌓이고 소매, 칼라(옷깃), 등판 등 총 64개 조각으로 흩어진다.
평균 근속 연수 40년을 자랑하는 ‘기술자’들의 손놀림은 거침이 없다. 재단부터 포장까지 약 15단계가 필요하다.
이 원단 조각들이 섬세한 바느질을 거쳐 셔츠 1벌로 탄생하기까지 걸리는 시간은 단 60초.

이곳은 서울 수도권 지역에 유일하게 남은 형지I&C의 맞춤 셔츠 공장이다. 지난 1981년 서울 금천구 독산동에 1190㎡(360평) 규모로 설립된 이 공장은
2012년 우성I&C가 패션그룹형지에 인수되기 이전부터 셔츠만 전문적으로 생산하던 곳이다.

주로 형지I&C의 프리미엄 셔츠 브랜드 ‘예작’, ‘본’ 등을 생산한다. 생산능력은 일평균 800장, 월평균 1만6800장 정도다.
국내 셔츠 공장 중에서는 3위 안에 들어가는 수준이다. 현재 형지I&C는 예작 브랜드로만 연평균 350억원의 매출을 올리고 있다.
약 20만원대 고급 라인을 담당하는 서울 공장에서만 형지I&C 연평균 매출액의 70%가 나온다.
회사의 주인이 바뀌고 사장이 여러 차례 교체되는 과정에서도 예작 사업부는 흔들리지 않고 매년 성장해왔다,
패션업계가 고전을 면치 못하는 현재도 형지I&C는 6% 이상 한자리수 성장을 이어오고 있다. 비결은 바로 이곳 공장에서 40~50년 동안 한자리를 지킨 숙련공들 덕분이다. 한때 360여 명까지 근무하던 곳이지만 현재는 셔츠 생산 인원 36명을 포함해 김복선 공장 대표까지 총 55명이 재직하고 있다.

지난 1999년 입사해 만 20년 이상 이곳에서 근무한 김복선 대표는 ‘예작’ 브랜드와 긴 세월 함께해온 공장 직원들에 대한 애정과 자부심이 남달랐다.

김 대표는 “예작은 입사한지 6개월 만에 론칭해 지금까지 만들어온 브랜드이고 공장 식구들도 모두 가족 같은 존재들”이라며
“모두가 저임금, 저가 원단을 찾아 해외로 떠나는 상황이지만 예작이라는 브랜드가 국내 1위를 탈환할 때까지 이곳에서 버티며 한번 해볼 생각”이라고 말했다.

예작은 꼼꼼한 공정 과정과 맞춤형 서비스로 라이선스 브랜드들이 버티고 있는 고급 셔츠 시장에서도 2000년대 초반까지 1위를 차지하던 국내 토종 셔츠다.
현재도 롯데 잠실, AK 수원 등 예작이 납품되는 전국 50여개 백화점 점포 중 10개 매장이 셔츠 카테고리 점유율(MS) 1위를 차지하고 있다.
비법은 일부 가공 과정을 생략하지 않는 정직한 공정이다. 의류는 동일한 소재라도 가공 과정, 기법에 따라 결과물에 큰 차이를 보일 수 있는데 형지I&C의 예작 셔츠는 고급 브랜드의 가치를 지키기 위해 원가절감을 이유로 리퀴드 암모니아(LA) 가공처리 등을 절대 생략하지 않는다.

또한 봉제 인력은 하나의 공정에만 참여하는 최정예 전문가들이다. 수 십 년 경력의 봉제 기술자 ‘마에스트로’들이 수작업으로 직접 생산한다.
다수의 의류 생산 공장에서는 하나의 봉제 인력이 여러 공정에 참여해 품질이 일정하지 않은 경우가 많다.
형지I&C 공장에서는 한 명의 전문화된 인력이 하나의 공정에만 참여하도록 해 봉제의 동일성과 품질을 높였다.

40년 이상 경력자의 봉제 기술 노하우는 최신 기기도 따라갈 수 없는 품질을 자랑한다. 15년 경력이 막내 뻘이다.
라벨 담당자는 30년 경력, 올해 68세인 정연숙씨는 한 자리에서 50년 이상 같은 재봉틀을 잡아왔다.

지난 1999년에 입사해 만 20년 동안 재직한 A씨는 “셔츠 칼라와 소매 공정을 담당해왔는데 이곳 공장은 정년퇴임이 따로 없다.
형지I&C의 자회사로서 안정적 고용환경을 제공해 타 공장에 비해 근무환경이 좋다”면서 “이직률이 거의 없는데다
60대 직원들도 기술에 대한 자부심을 가지고 인정받으면서 일할 수 있는 곳”이라고 말했다.
'메이드 인 서울(Made in Seoul)’의 이점은 수도권에 위치해 있어 맞춤·수선 등에 대한 소비자 요구가 있을 때 대응력이 빠르다는 것이다.

예작은 소비자의 취향에 따라 선호하는 디자인과 핏을 선택할 수 있는 맞춤 셔츠의 제작에도 힘쓰고 있다.
프리미엄 맞춤 셔츠의 판매량은 현재 예작 셔츠 전체 판매량의 약 10%를 차지하고 있으며 재 구매율도 높아 매출 효과를 톡톡히 보고 있다.

올해로 22주년을 맞은 예작은 국내 토종 브랜드인 만큼 해외 라이선스로 인한 로열티 지출이 없고,
해당 비용을 다시 연구개발(R&D)·생산 설비 및 인건비에 투입할 수 있어 결과적으로 의류의 품질이 높아지는 선순환 구조가 발생한다.

김 대표는 “원가절감과 최저임금 인상 등을 이유로 의류 공장이 해외로 옮겨가고 있는데
몇몇 공장은 한 달에 공정일이 15일이 채 되지 않는 곳도 많다”면서 “대기업 하청이 끊기면서 섬유산업 자체가 버틸 수 없는 구조가 되어 버린 것인데
중국 베트남 미얀마까지 값싼 인건비와 원자재를 찾아다니기만 한다면 결국은 K패션 경쟁력 자체가 무너지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출처 : https://www.edaily.co.kr/news/read?newsId=01348086622715240&mediaCodeNo=257&OutLnkChk=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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